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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건축(Architecture as Modification)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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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건축(Architecture as Modification)에 대하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왜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었다. 계획 당시부터 업무 용도로 지어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용하고 있었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애초 지정 문화재도 아니고 우리나라 최초의 무량판 구조 건물이라는 기술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에서 과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리모델링 해야 할 것인가?”가 계획의 주안점이었다.

리모델링은 기존에 있는 것을 고쳐서 재활용한다는 의미다. 재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 남기지 않아도 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어떤 것이 가치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없어져도 괜찮은 것인가? 설계 과정에서 과감하게 새로 짓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실제로 경쟁 작품 중에는 신축에 가까운 제안들도 다수 있었다. 결국,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각을 모으는 과정에서 리모델링이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었고,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용어가 된 리모델링에 대해 좀 더 속 깊은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이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건축을 오롯이 구현하는 리모델링의 정의

건축법의 정의에 따르면 ‘리모델링이란 건축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거나 기능 향상 등을 위하여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기존의 낡고 불편한 건축물을 증축, 개축, 대수선 등을 통하여 건축물의 기능 향상 및 수명 연장으로 부동산의 경제효과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또는 “오래된 아파트나 연립 주택을 기존의 골조는 그대로 두고 새롭게 고치는 일” 등으로 알려졌다. 리모델링(remodeling)은 ‘개조하다’, ‘개축하다’, ‘형태를 새로이 하다’라는 뜻으로 ‘reform, renewal, renovation’ 등의 용어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리모델링은 한마디로 건축 분야의 재활용 프로젝트를 의미하며 건물의 유지, 보수, 개수를 모두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쓰인다. 즉, 단순히 물리적 의미의 개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성격과 용도를 포함해 특성까지 변모시키고, 나아가 수익성까지 새로이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리모델링은 건축물의 기능 향상 및 수명 연장으로 부동산의 경제 효과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지만, 여기서는 부동산 소득을 창출하는 행위이기 이전에 건축을 구현하는 한 방식으로써 리모델링의 의미와 효과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리모델링의 역사 짚어보기

최근 리모델링 시장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리모델링 관련 학회와 건축상도 생겼고 리모델링에 관한 대중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리모델링 확산의 요인은 최근 신축 건설경기가 둔화되고 1980, 90년대 고도 성장기에 지었던 건축물들이 노후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해방과 전쟁 후, 우리나라 건축의 기반이 되었던 근대건축에서 그 실질적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건축사에서 근대건축은 일반적으로 한 양식으로 분류된다. 르 코르뷔지에가 정의한 것처럼 장식이 배제된 백색의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는 건축 양식이며 19세기의 역사주의와 장식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 미학을 완성한 건축양식이다. 이러한 유럽의 근대건축이 미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의 모태가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초기의 근대건축은 건축양식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능주의적이고 사회 개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근대적 유토피아의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나 하네스 마이어(Hannes Meyer) 같은 근대건축의 선구자들은 “건축이 산업문명의 발전에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뚜렷한 사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초기 산업시대가 이룬 엄청난 성장에 열광했고 생산력 향상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에게 과거는 극복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으며, 건축은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순수한 정신의 창작이었다. 새로운 것이란 옛 것의 부정을 전제로 했고 새 것은 과거의 것을 대체한다고 여겼다. 근대화 이론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들은 산업사회의 영원한 발전을 굳게 믿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과 파괴를 의미했다.

한편, 그들은 전통적이고 학술적인 규범들을 거부했다. 역사적인 도시와 마을은 과학적 사고의 논리성에 근거해 기능적인 도시와 마을로 변환되어야 했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양(Quantity)의 문제가 건축 이론의 화두로 제기되었다: 급격하게 증가한 도시 노동자를 위한 주거 확보의 문제, 산업화한 건설재료의 양의 문제, 사회 인프라 및 공공 서비스의 확충 문제 등이 대두됐다. 결국, 급속한 성장과 양(Quantity)의 문제가 근대의 성격을 규정지었다고 볼 수 있으며, 무한할 것만 같았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대중이 인지하면서 1960년대에 들어서 근대건축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각종 천연자원 및 에너지 고갈의 위협이 현실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해졌다. 생산과 성장을 말하기보다 이제는 기존의 것을 재정비하고, 노후한 산업 단지를 재사용하며 도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질(Quality)에 대한 인식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 발전과 양적 성장에 매진해왔으며 주력 산업의 구조는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화려한 성장과 변화는 그 그늘에 도태된 부산물을 남겼다. 노후한 제조산업 관련 시설과 배후 주거 단지, 폐 철도와 기차역사, 도시로 모두 다 떠나면서 학생이 없어진 폐교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장소들은 팽창과 생산의 신화를 신봉했던 근대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의 기억과 함께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은 생산논리로 다루지 못하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것들이 소중한 건축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일련의 건축적 경험들을 통해 이미 체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화신 백화점 자리에 세워진 종로타워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대한 평이 엇갈리는 것은 그 자리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무게와 의미를 다루는 데 좀 더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정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친 진보된 사회에서 풍요라는 개념은 더는 물질적 양에 의해서만 정의되지 않는다. 풍요는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Quality)에 따라 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건축가에게 새로운 의문을 갖게 만든다.

 

 

“무엇이 소중한 것이며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
“무엇을 후세에게 물려줄 것인가?”
“유산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리모델링의 가치 기준

“유산을 왜 보전해야 하는가?” 혹은 “왜 보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유산의 보전 적용 기준이 명확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 기준은 절대로 임의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건물에 유산의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그 기준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가변적이어서 유니버설한 원칙을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문화유산에 관한 범세계적 적용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베니스(Venice) 헌장

1964년 5월 유네스코에서 기념물 및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회의를 베니스에서 개최하고 이때 결의한 내용을 헌장으로 제정 발표했다. 회의 개최지의 지명을 딴 ‘베니스 헌장’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산 보존에 관련한 지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기본 취지는 다음과 같다.
“과거로부터의 메시지에 물들여진 채, 수 세대에 걸쳐 내려온 역사적 기념물은 오래된 전통의 살아있는 증거물로서 남겨져 온다. 사람은 인간의 가치의 동질성을 더욱더 인식하게 되고, 고대의 기념물을 공동의 유산으로 여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이것을 보호하는 공동의 책임을 깨닫게 된다. 진정성을 온전히 보존하여 이것을 후세대에 내려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고대 건물의 보존과 보수를 안내하는 원칙이 합의되고, 그 원칙이 각 나라가 그 나라의 고유문화와 전통에 입각하되, 국제적 차원에서 규정되는 것은 필요하다.”

베니스 헌장은 고적의 보수적인 보전과 복원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헌장의 중심에는 유럽의 기념비적 건축물들의 보전에 치우쳐 있고 제한적이어서 비 유럽권에 적용할 만큼 범용적이지 않다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다.

 

 

버라(Burra) 헌장

최근 들어,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경직된 보존의 틀을 벗어나 보다 민주적이고 참여하기 쉬운 유연한 보존의 개념이 대두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1979년 국제협약과 헌장에 근거하여 호주 유산 관리에 적용 가능한 독자적인 ‘버라 헌장’을 발표했다. 버라 헌장은 1981년과 1988년 수정을 거쳐 1999년 수정 보완됐다. 버라 헌장은 유적지와 관련된 콘텐츠, 사물, 유적지의 철폐, 증축 등의 새로운 작업, 사용, 구조, 간섭행위, 기록 작업 등을 다루고 있으며 자연적, 문화적 범위의 유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유산과 문화재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들을 지역 특성에 맞게 규정하고 있으므로 비 유럽권 국가에서도 그 원칙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주요 개념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장소에 적용할 수 있는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연적, 토착적(indigenous), 역사적 장소를 포함한 문화적 의미가 있는 모든 장소에 적용된다.

2) 왜 보전하는가?
문화적 의미가 깃든 장소는 우리에게 지역사회와 풍경, 과거, 삶의 경험들과 교감할 수 있는 영감을 주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것은 국가의 존재와 궤적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또한 문화적 의미가 깃든 장소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대변하고 우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을 만들어낸 과거를 말해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셈이다. 문화적 의미가 깃든 장소는 우리 세대와 후손들을 위해서 세대 간의 형평성 원칙을 존중하면서 보존되어야 한다. 변형을 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장소를 관리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할 것이나 문화적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변형만을 적용할 것이다.

3) 문화적 의미란?
문화적 의미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대를 위한 미적·역사적·과학적·사회적 또는 정신적인 가치를 뜻한다. 버라 헌장이 베니스 헌장과 가장 다른 점은 기념물(monument) 대신 장소(place)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데 있다. 자연에서 생산되는 소재로 오랜 세월 지속하는 구조물을 만들지 않는 호주 원주민들에게 기념비적 건물이란 개념을 적용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축조한 건물보다는 건물이 자리 잡는 자연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장소 개념 덕분에 헌장을 더는 건물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에는 모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버라 헌장에서 주목할 다른 점은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베니스 헌장이 과거 건물의 미적인 면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면 버라 헌장은 장소의 현대적, 사회적 의미 또한 문화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리모델링의 가치 기준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일정 부분 해답을 주고 있다.

"고쳐 쓰는 건축", 《2014 정림건축 연감집》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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