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Relation #02

네 가지 사례로 본 리모델링의 효과

고쳐쓰는 건축-2

다음의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신축 대비 리모델링의 효과를 되짚어 볼 수 있다.

 

1. 장소와 기억의 보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리모델링의 핵심은 대지가 위치한 장소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건물과 장소를 하나로 만드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와 함께 한 건물을 보존하여 계속 활용한다는 점과 지하 개발을 지양함으로써 땅속의 매장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지가 위치한 세종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축으로 경복궁과 맞닿은 국가상징거리다. 조선시대부터 조성된 도시공간 구조에 의한 정체성이 담겨 있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고스란히 땅과 켜 속에서 품고 있는 ‘시대적 유산’이다. 이것이 기존의 장소가 지닌 가치이며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해야하는 이유다. 이러한 장소에 역사와 흐름을 담아낸다는 것은 단순한 전시시설이 아닌, 시대와 소통하는 ‘대화의 장소’ 그리고 시대를 조망하고 기억하는 ‘기억의 장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아이덴티티의 형성, 교보생명

교보생명은 이해관계자 간의 장기적인 공동 발전을 추구하며 지속가능경영을 원칙으로 삼은 기업이다. 교보생명은 지속가능경영의 목적으로 7개 지방 사옥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대부분 1985년 전후에 지어진 건물들로 교보생명 고유의 일관된 건축 어휘를 가지고 있다. 기존 구조체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내부 코어, 외장과 창호 및 설비를 교체한다. 리모델링의 중점은 단지 헌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25년 동안 살아온 구축물의 흔적을 바라보고, 지속가능, 친환경이라는 기업이 쌓아온 긍정적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개선하는 것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인간중심의 가치와 친환경성 고려, 신뢰라는 교보생명의 기업 이념에 맞으면서도 역사적 흐름 속에 미래의 비전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을 저층부에 모으고, 선큰과 그린하우스, 개방감 있는 로비, 옥상정원으로 이어지는 환경 개선은 근로조건뿐 아니라 지역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브랜드 가치를 재창출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3. 도시 재생, 광주 남구청

광주광역시 남구청사가 이전할 화니 백화점은 남구 주월동의 백운교차로에 미완성인 채 방치되고 있던 건물이다. 원래 광주의 향토 백화점인 화니 백화점이 현대, 롯데, 신세계 등 메이저 백화점의 광주 진출에 맞서 건축했으나 외장이 완공된 상태에서 공사를 완료하지 못하고 약 20년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방치되는 동안 이 건물은 도시의 흉물로 변해서 구도심에 속하는 광주 남구의 낡은 모습을 상징하는 무기력한 아이콘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11월 광주광역시 남구청이 이 건물을 매입하고 리모델링을 기획했다. 낙후된 구도심의 상징물로 남아 있던 화니 백화점을 재활용해 청사와 구 의회, 보건소와 구민 편의공간으로 전환하고, 신축 이상의 기능을 만족시키는 기능형 종합청사를 제공하는 경제적인 리모델링과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리모델링을 통한 도심 재생 프로젝트다.
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남구 일대에 흩어져 있던 기관들을 한 건물 안에 통합한 종합청사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시설 복합화 사업으로, 종합청사 기능 외에 임대시설을 40% 이상 포함해 시민 편의를 증진시키고 임대시설을 활성화하여 지역 상권을 살린다는 것이었다. 2013년 4월 8일 개청식 이후 광주 남구청 건물의 가치는 이전에 비할 수 없이 상승했고 주변 분위기 또한 현저히 달라졌다. 지역의 골칫거리였던 건물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악조건을 극복하고 도시에 활기를 주는 공공장소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공공건축이 나아갈 방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4. 새로운 공간, 형태, 창작의 도구, 리옹 오페라하우스

장 누벨(Jean Nouvel)은 1986년 리옹 오페라하우스 리노베이션 및 증축 설계경기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기존 건물의 육중한 1층과 2층 외벽들을 보존함으로써 인근 19세기 양식의 시청 건물과 시립 박물관 등 공공건물들로 구성된 주변 콘텍스트와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반면 거대한 보석 상자를 연상시키는 상부의 매스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여전히 현대적이다.
 

예전의 것과 새것이 이루는 대조의 결과는 대단히 극적이다. 옛 것이 직선적이고 두꺼우며 무거우면서 분명하다면 새것은 곡선적이며 얇고 가벼우면서 모호하다.

이러한 극단의 대조는 낡은 것과 새것의 혼합이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를 창작할 수 있게 한다. UN스튜디오의 벤 반 버클(Ben Van Verkel)은 Manimal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극히 다른 성격의 것이 혼합되면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생성된다. 서로 달랐던 특징들은 원래 각자가 속해 있던 실체에서 분리되어 모호해지면서 하이브리드화된다. 옛 것을 보존하면서 현대의 재료와 형태가 더해질 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 바로 리모델링의 또 다른 효과다.

"고쳐 쓰는 건축", 《2014 정림건축 연감집》 발췌 재구성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