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의 미래. 고쳐 쓸 수 있게 만들 것
고쳐쓰는 건축-3리모델링의 미래, 고쳐 쓸 수 있게 만들 것
20세기는 건축 행위가 필요한 시대였다면, 건축 행위가 더는 그 유효함(케인스 경제와 모더니즘)을 잃어버린 지금, 21세기의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 쿠마켄고는 그의 저서 『약한 건축』에서 “건축은 크고, 낭비적이며, 확고 불변한 건축이 아니라… 개인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고 민주적인 건축, 흙벽돌과 같이 자연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물질의 활용, 목조와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용할 수 있고 수선 가능한 건축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건축이 지속할 수 있으려면 변하는 시간과 환경에 적응 가능해야 한다.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에 힘입어 사회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개인의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또한 디자인에서 적응 가능성(adaptability)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부여한다.
디자인 요소로서의 시간은 건축을 콘텍스트 상에서 이해하고 시대적 상황과 변화와 연결 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은 흔히 이런 시간적 요소들을 외면하고 미적 요소 또는 건물의 기능적 완성도에 집착하면서 고정화된 완벽한 오브제를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디자인이 기념비화, 랜드마크화 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현대건축에서는 권력주도하의 과시적 사업에서 자주 나타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완공되기 전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는 “개관하자마자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엽서가 도서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필립 제네스티에(Philippe Genestier)는 건물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소통과 연구 없이 과도한 독창성만을 추구하는 자아도취적 태도가 건물과 주변 환경과의 밀접한 관계 형성에 장애가 되는 것을 설명하며, 이런 과시적 사업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매섭게 비판한다.
또 다른 예로, 스페인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은 프랑스(Marne-la-Vallee, Montpellier, 파리 몽파르나스역 지구)에서 일련의 사회 임대주택을 디자인하면서 고전건축의 장식요소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이 향후 가치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플로렌 샹피(Florent Champy)는 “고전건축과는 거리가 먼 임대주택 프로그램에 구 시대의 장식을 덧붙인다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20년 후에도 누군가가 관심을 두는 이가 있다면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얄팍한 건축의 표본이 될 것이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인즉, 과거에 가치가 있었던 코드를 사용해 미래의 가치를 유추하고 미래의 기념비적인 건물을 미리 만들려고 하는 입장에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건축에 시간의 흐름을 깃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건축은 어느 시점에 정지된 완성물이 아니라, 건물의 기능, 테크놀로지, 미적 기준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그 형태를 맞추어 가는 ‘미완성 상태의 연속’이다. 이제 건물이 변화와 재사용에 대응할 수 없다면 그 속에서 지속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적응 가능성,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건물을 기술적·설비적으로 특별하게 만들거나 복잡한 구조를 적용해 다목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고쳐 쓰는 건축은 시간과 변화를 인식하고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콘텍스트 속에서 디자인하고자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알바로 시자(Alvaro Joaquim de Melo Siza Vieira)의 포르투갈 에보라 시 말라게이라(Malagueira) 프로젝트는 복잡한 고쳐 쓰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에보라 시는 리스본에서 약 140km 떨어진 인구 4만 명의 도시로 로마, 포르투갈, 아랍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 1986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에보라 시 말라게이라 지구에 1,200세대의 주거 단지를 계획한 알바로 시자는 자신의 작업을 도시에 거대한 흰색 천을 덮는 것과 같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거대한 흰 천은 연속된 그리드를 만든다. 단순하고 순수하다. 대지의 굴곡진 표면에 얹어지면 그제야 숨겨진 모습들이 드러난다. 대지의 전역에 걸쳐 펼쳐진 흰 천은 미끄러지고 서로 가까워지고 흡수하고 불어나면서 예전에 존재하던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방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내가 말라게이라를 그리는 방식이다.”
알바로 시자에게 고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새로운 그림 속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대지의 돌과 담장, 버려진 것들을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의 유적처럼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알바로 시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진정한 건축의 교훈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 속에서 파괴하지 않고 오직 더하거나 중첩하면서 대지를 변화시키도록 계획하는 것, 이미 그곳에 있는 대지와 조화를 이루면서 진심으로 향상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은 미래에 고쳐 쓰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지속적이다. 알바로 시자는 현재의 성급한 소비적 건축을 거부한다. 그의 말에서 리모델링 건축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 내가 하는 일은 변화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훨씬 더 넓고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고 나는 단지 그 변화에 참여할 뿐이다. 나는 고정된 건축 어휘를 고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작업하지만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다가올 다음 순간을 주의 깊게 기다린다.”
"고쳐 쓰는 건축", 《2014 정림건축 연감집》 발췌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