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성과 사옥
기업의 아이콘
기업의 각각 고유한 창립이념과 기업문화는 곧 기업의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며 그 일에서 파생된 정신과 비즈니스 철학 등이 생겨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그 기업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생긴다.
그런 기업의 사옥을 설계할 때는 오피스로서의 계획과 더불어 기업의 비전과 이미지를 건축화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오피스는 프로그램상으로 보면 기능적이고 명확한 성격의 건물이고, 코어와 모듈 그리고 파사드 등으로 치환된 단순한 건물이다.
하지만 사옥으로서의 오피스는 단순한 건물 이상의 가치를 담아낸 건물이 요구된다. 즉 기업의 정체성이 하나로 집약된 기업의 아이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사옥으로서 기업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건 결국 우리 건축가의 몫이다.
기업은 어떤 건물을 원하는가?
자신이 사용할 업무시설, 즉 사옥을 지을 때 과연 기업들은 어떤 건물을 원할까?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며 꿈을 꾸듯 기업은 사옥을 지을 때 많은 기대와 꿈을 담고자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하며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수많은 직원들이 일하게 될 사무실로서의 기능성과 효율성을 고려하며, 기업문화를 프로그램과 공간에 담아야 하고 건물의 미적 아름다움도 완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건물 자체가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길 원하고 다른 건물에 비해 돋보이길 원한다.
무엇이 아이콘을 만드는가?
현대라는 기업을 생각할 때 대개 현대그룹 사옥 본관을 떠올리고, 서울역 앞의 수직적인 건축은 대우의 상징성으로 인식된다. 아마도 매스컴에서 기업의 뉴스를 전할 때 항상 해당 기업의 사옥을 보여주기 때문에 기업과 사옥건물이 동일시되어 우리들 기억에 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옥을 신축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기업을 상징할 수 있는 실마리를 무엇에서 찾고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을까? 기업마다 추구하는 바와 기업문화가 다르다. 어떤 기업은 기능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또 어떤 기업은 강직함이나 견고한 이미지를 원한다. 또는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개방성을 원할 수도 있다. 우리 건축가들은 기업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기업문화의 독특함이 무엇인지, 업무 스타일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더 나아가 미래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묻고 찾고 생각한다. 결국 기업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무형의 가치를 건물로 만드는 것이다.
도시의 맥락과 기업정체의 조화
많은 가치들 중 거르고 걸러 정제된 핵심가치를 메인 콘셉트로 삼아 건물의 전체 디자인을 만들어갈 때 기업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것을 찾게 된다. 그것은 의외로 땅이 주는 영감이나 주변 콘텍스트로부터 올 수도 있고, 기업 이미지가 단순한 형상이 되어 찾을 수도 있다. 기업의 로고나 색감, 제품 등은 일차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고, 기업의 핵심가치는 건물 디자인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디자인의 반은 땅과 자연이 알려주고 나머지 반은 건축가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땅이 주는 실마리는 좋은 경관과 자연, 재료와 물성 그리고 주변 건물들일 수도 있고, 건축법규의 제약조건에서 올 수도 있다. 복수 이상의 기업이 건축주인 경우는 기업들의 공통점과 더불어 땅이 주는 실마리가 결정적 단서가 되어 부지와 건물이 주인을 만난 듯 딱 들어맞을 수 있다. 결국 기업의 아이콘은 도시의 맥락과 기업의 정체성이 조화롭게 융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도시와 소통하는 아이콘
종종 '튀는 건물, 튀는 디자인'이란 말을 붙이는 건물들이 있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건물을 일컬을 때 하는 말이다. 아이콘이란 단어도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오는 말이다. 기업의 정체성을 잘 담아 기업의 아이콘으로 완성된 사옥이 너무 튀기만 하고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도시에서 겉도는 건물이 될 수 있다. 비록 디자인과 완성도가 높지만 주변과 전혀 대화가 없고 소통하지 못하는 건물은 사랑 받기 어렵다. 도시와 소통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쉽게 생각하면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는 건물이 되면 된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열려 있고 편안하게 방문해서 쉴 수 있는 옥외공간이 제공되면 된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주변 맥락과 연관된 재료 사용과 더 나아가 주변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개방 프로그램을 내부에 두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여기에 재실자를 배려한 친환경적 공간이라면 사용자, 지역주민, 방문객 등 모두에게 사랑 받는 건물이 될 수 있다. 대단한 것을 고려하거나 바꾸기보다는 공공성을 띈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도시의 아이콘 / 우리의 아이콘
정림건축의 오피스 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간은 보수적이고 담담한 디자인의 건물들이 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형성 있는 디자인을 한 번쯤 할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작품성 있는 오피스 건물을 만들어 왔다. 그 이유가 뭘까? 사옥을 지을 때 기업의 정체성에서 디자인이 나오듯 우리 정림의 핵심가치들이 설계를 통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보편타당한 철학과 건강한 건축'에서 설계가 시작되고 조직 설계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면서 좀더 현실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건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시원해 보이는 커튼월 건물을 디자인하고 싶어도 재실자를 배려한 향과 환경 그리고 에너지를 생각하는 것이 기본상식이고, 과감하면서도 유행하는 조형언어를 쓰고 싶어도 한때의 유행은 금방 잊혀진다는 걸 알기에 지속가능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보편타당한 철학'은 어쩌면 초등학교 때 배운 '바른생활'의 기본에 충실한, 누구나 다 알지만 지키지 않는 그런 상식을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만들면 오래가고 사랑 받는 건축, 도시와 소통하는 진정한 도시의 아이콘, 완성되어 사용될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 우리들의 아이콘이 되길 희망한다.
2012년 정림건축 연감집 ‘Workplace & Identity?’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