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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n #09

조우하는 두 시대

31빌딩 리모델링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은 동서로 뻗은 청계천로와 남북으로 뻗은 삼일대로의 교차점에 자리해 있다. 건물이 지어질 당시 삼일고가도로가 그 앞을 위풍당당히 지나고 있었으며 청계고가, 세운상가와 더불어 종로구를 대표하는 명물로 꼽히던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다. 이 시대에 와서 겨우 31층이지만 63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준공된 이래 이 땅을 쭉 지켜왔으니 관철동의 터줏대감이자 지난 반세기 종로의 변화를 지켜봐온 목격자라 할 만 하다.
근대화의 상징. 우리나라 고층 빌딩의 출발점. 한국 근대 건축설계의 자산. 우리나라가 낳은 거장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 각종 교과서와 달력의 건축 모델 등 상전벽해의 세월을 지나온 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채, 삼일빌딩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처럼 존재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 삼일빌딩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오래된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녹여내되, 이 시대의 오피스가 요구하는 기능 또한 품을 것. 그리하여 독특한 장소성을 지닌 새로운 건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리노베이션의 핵심이었다.

 

 

먼저 건물 외관은 전체적으로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삼일빌딩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유지하고자 했음을 잘 보여준다. 변화를 꾀한 지점이 있다면 기존 커튼월의 유리를 현대식 전동 커튼월로 교체하고, 건물 뒤편에 위치한 회색 엘리베이터 코어를 건물과 어우러지는 짙은 색의 금속 패널로 바꾸는 정도다. 이처럼 시대에 맞지 않은 기능이나 지나치게 노후화된 마감재를 교체하는 정도로 작업을 절제했다.

사무공간에서는 백색을 주요 색상으로 선택하고 기존 노출된 천장에 길다란 면발광 조명을 구성해 부드럽고 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사무실 조명들은 해질 무렵이나 밤이 되면 현대적인 감각으로 빛을 발산하며 종로의 가로 일대를 장악한다.

 

 

로비는 저층부의 슬래브를 철거하고 구조 보강 작업을 거치면서 훨씬 높아지고 환해졌다. 선큰으로 진입이 이루어지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3개 층에 걸쳐 연계된 공간은 수직적 개방감을 확보하면서 그 깊이가 더해졌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 나선형으로 오르는 백색 계단은 엘리베이터 동선과 또 다른 역동성을 연출한다. 매끈하고 세련된 나선형 계단을, 50년 세월을 버틴 콘크리트 기둥과 보가 거친 모습 그대로 노출되어 감싸고 있다. 일견 대비되는 모습이나, 조우하는 두 시대라 해석하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건물의 달라진 표정은 로비와 더불어 입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청계고가 철거 후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 보행중심가로가 조성됨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가로에 건물 저층부가 대응하는 전략이 새롭게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출입구는 기존 주차장으로 활용될 당시의 산만함과 누추함을 없애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삼일대로 방향으로 옮겨 접근성을 높였다. 선큰 가든을 조성해 가로와 소통하고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시대성과 도시적 감각을 반영한 모습이다. 

 

 

 

활기차고 새로운 기운을 덧입으며 공간에 적층된 이야기가 그대로 남아 이어지면서, 오래된 아름다움이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만나 더욱 농익어가게 된 점. 이번 삼일빌딩 리모델링에서 안도와 감사를 느끼는 이유다.

 

 

 

건축주: 신한은행 (발주처: SK DND)
위치: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설계팀: 김해진(TL), 박재완, 이의진, 김현삼, 조성원, 손동기, 김재현, 김정연, 김승택, 정보근
컨셉설계: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
CM: 정림씨엠건축사사무소 | 안인석(단장), 김성식, 김선식
사진: 윤준환
기사 제공: C3KOREA
편집: 정림 콘텐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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