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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e #11

병원의 로비는 꼭 1층이어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의 로비는 내원객들이 차에서 내리는 1층에 배치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대지가 평평하고 넉넉한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면 당연히 승하차장과 로비는 1층에 배치해야죠. 그런데 만약 대지조건이 병원의 승하차장 레벨에 로비를 만들기 곤란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저희가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모 프로젝트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 병원은 대지가협소하고 경사가 져 있어 승하차장이 위치하는 층에 로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내원객들은 출입구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에 마련된 로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로비를 승차하장 레벨(주로 1층)이 아닌 다른 층에 배치한 병원 사례를 찾아보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중소형 병원들 사례는 몇몇 있지만, 대형병원 중에는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우선, 유사한 사례로서 대지상황이 비슷했던 모 병원 현상설계 때의 저희 안을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 병원 현상안의 승하차장과 1층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_정림건축]

 

저희 안에서는, 승하차장 레벨에 로비와 부속기능들을 함께 수용하기엔 부족한 상황인지라, 내원객들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의 로비 레벨로 이동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승하차장 레벨과 로비 레벨을 달리 하기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성산대로변 부출입구 진입 시퀀스]

 

세브란스병원 본관 역시 대지에 경사가 있어 유사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승하차장과 로비는 전면 도로에 면하지 아니하고 뒤쪽으로 원내의 경사로를 이용하여 올라가 3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신 전면 도로와 접하는 1층에도 병원로비로 접근할 수 있는 부출입구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 부출입구는 3층 승하차장까지 멀리 돌아가는 대신, 전면 도로변에서 내려 병원 안으로 진입하려는 내원객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이곳 부출입구에서는 들어서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개 층을 올라가 로비와 연결됩니다.


 

해외병원 사례 중에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Lunder 빌딩을 들 수 있습니다.

 

 

[매사츄세츠 종합병원의 Lunder Building (NBBJ)]

 

이 건물은 대지가 무척 협소하고 저층부에는 응급부, 수술부 등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건물에는 외래 기능은 없기 때문에, 건물의 로비는 병동이 시작되는 6층에 아트리움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Aekudon International Hospital, 태국]

 

로비를 2층에 배치하는 경우는 해외병원들에 종종 있습니다. 제가 보았던 태국이나 베트남, 케냐에서 이러한 병원들을 본 적이 있는데, 위 사진의 태국 병원에서처럼 차량들은 램프를 이용하여 2층 로비 레벨로 진입하고, 보행자들은 1층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로비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로비를 2층으로 들어올리는 이유는, 이러한 나라들이 우천이나 습기 같은 자연환경이나 기술적인 이유에서 지하층 설치를 가급적 피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1층에는 주로 응급부, 물류시설, 설비시설 등을 배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은, 단지 도발개상국의 경우뿐만 아니라 수해 예상지역에 건설되는 선진국 병원들의 시설배치전략으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준공 당시 사진(1978년)과 국군수도병원]

 

여담이지만, 서울대학교병원의 준공식 때 사진을 보면 2층으로 진입하는 램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램프는 2층의 외래로 오는 내원객들을 위한 별도의 램프였다고 합니다. 만약 그러한 목적이었다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환자중심적 디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램프는 예전 군병원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환자중심 개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1층이 일반 출입구라면, 2층 승하차장은 병원장이나 외빈 등이 2층의 행정시설로 바로 진입하는 VIP 출입 용도였으니까요.

 

그럼 이번엔 병원과 건물 구성이 비슷한 호텔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호텔 역시 병원의 병동부처럼 거주기능의 객실 타워가 상부층에 놓이고, 아래에는 병원의 외래 및 중앙진료부에 해당하는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넓은 저층부가 놓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호텔건물에서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로비를 1층이 아닌 중간층이나 최상층에 배치하는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로비를 건물 중간이나 최상층에 배치한 국내 호텔들]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는 5층에 리셉션 홀이 배치되어 있고, 강남구의 파크 하얏트 호텔은 로비를 최상층인 24층에, 부산 해운대의 파크하얏트 역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30층에 로비가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텔들의 특징은 진입 시퀀스가 상당히 극적이란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호텔에서는 로비에서 바라보는 외부 전경이 차량들로 번잡한 승하차장이라면, 이들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높은 시야와 개방된 외부 조망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물론 호텔과 병원의 기능상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공적(on-stage)과 사적(off-stage)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점에서는 유사할지는 모르나, 병원은 호텔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고 복잡합니다. 또 많은 내원객 동선을 수직이동시키기 위한 엘리베이터의 부담도 커지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병원 로비를 디자인할 때는 다른 병원들 사례보다는 오히려 고급 호텔이나 쇼핑몰을 레퍼런스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로비 디자인에 있어선, 병원들에 비해 호텔이나 상업시설들은 훨씬 더 쾌적하고 사용자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1층의 로비 배치도 좋지만, 대지조건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역발상으로 상부층에 로비를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역발상이 그 병원만의 인상적인 진입 시퀀스로 내원객들에게 의외의 놀라움(wow effect)을 선사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글. 박원배 (정림건축 / 메디컬플래너)

출처. "헬스케어 디자인 매거진" MAGAZINE HD 2023 2월호 <https://magazine-hd.kr/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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