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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e #07

모든 이에게 햇볕을!

 

 

병원의 복도를 생각할 때 첫 번째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진 어두컴컴한 복도를 연상할 것입니다. 건물의 창가 쪽에는 실들 위주로 배치되어야 하니까 병원의 복도가 암실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병원들에 있어서도 아트리움이라든가 중정들이 내부에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외래환자나 내원객들이 다니는 공용복도들은 그나마 햇볕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 직원, 물류들이 다니는 직원 복도는 여전히 암실 조건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병원의 복도들은 항상 암실이어야 할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병동과는 달리 병원 저층부의 실들은 주로 낮에만 사용됩니다. 즉 24시간 가동률로 따지면 사용시간이 적은 방들이 대부분이죠. 반면에 복도들은 낮 시간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특히 직원 복도는 의료진, 물류뿐만 아니라, 검사를 위해 휠체어나 스트레쳐를 타고 이동하는 입원환자들이 24시간 내내 이용하는 곳입니다.

 

이렇듯 병원 복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창문도 없이 양쪽으로 출입문만 도열된 긴 복도를 오가기 때문에 하루 중의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제가 처음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전에 MD 앤더슨 암센터의 외래진료동인 메이스 클리닉을 견학했던 때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건물은 도면 아래쪽의 공용복도(public corridor)와 반대편 외주부 쪽에 직원 복도(private corridor)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공용복도는 물론 직원 복도까지 창가에 면해 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좋은 건 베껴야죠.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을 설계할 때 이 개념을 처음 적용해보았습니다. 실들 위주로 창가 쪽에 배치하는 대안(좌측) 대신, 복도를 외주부로 하여 채광을 제공하고 기능공간의 융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우측)을 선정한 것이죠.

 

그러나 몇몇 부서들이 창가에 실들을 배치하고자 복도까지 차지함으로서 최종 평면에서는 원개념이 다소 희석되어버렸습니다. 언젠가 리모델링 시점에서 부서 평면을 개편한다면 원 설계 개념으로 돌아가길 기대해봅니다.

 

  

 

이러한 시도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코스타리카의 한 공공병원을 견학했을 때였습니다. ‘에레디아 산 빈센테 드 파울 병원’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건물 전면의 공용복도는 물론, 후면을 따라 햇살 가득하고 널찍한 직원 복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미의 공공병원에서도 적용하는데 우리가 못할게 어디 있어?”

 

 

위 평면은 제가 곧바로 수행했던 콜롬비아국립대병원의 기획설계안입니다. Public(내원객) 동선과, Private(의료진/물류/입원환자)의 동선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도들은 각각 아트리움과 외부로부터 자연채광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후 우리 회사 병원설계팀에서 사용하는 동선체계 프로토 타입 중 하나로서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네, 도전은 계속됩니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중국의 한 병원 프로젝트에서 원래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건물 후방의 직원/물류용 복도에도 채광을 주고자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도도 불발되었습니다. 중국의 법규와 프로그램 증가로 인해 결국 채광을 위해 파놓은 공간은 아래쪽의 평면처럼 메꿔져 버렸습니다. 그럼 도전기는 이쯤 하고, 국내와 해외 프로젝트 중 성공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의 평면은 위아카이에서 설계한 강북삼성병원 암센터 리모델링 프로젝트로서, 진료실을 안쪽으로, 복도와 환자대기 공간을 창쪽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늘 실들을 창가 쪽에 배치해오던 관행에서 탈피한 첫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의 평면은 미국 콜로라도의 ‘팔로마 메디컬센터 에스콘디도’의 수술부층입니다. 주황색 점선으로 표현된 채광창을 보시면 내부 복도의 공간 분위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햇볕이 닿지 않는 안쪽 공간에도 중정과 테라스를 설치하여 거의 모든 내부 복도들이 자연채광이 닿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형 병원의 평면계획에서는 외주부에 기능실들 위주로 배치할 수도 있고, 복도를 우선적으로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외주부 복도 방식의 큰 단점 하나가 눈에 띕니다. 어떠한 실도 채광 면에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창문(‘borrowed light’이라고 부릅니다)을 이용하면, 복도 안쪽의 실에도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채광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실이라면 일부 필름을 붙이거나 고창 형태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며 오피스 레이아웃에 있어 새로운 추세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자연채광의 공유’ 개념입니다. 예전에는 창가 쪽에는 주로 높은 사람들의 개실형 사무실이 배치되었다면, 최근 오피스들은 개방형 레이아웃과 더불어 창가 쪽은 복도나 아예 휴게공간 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병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병동을 제외하고) 저층부의 창가 공간은 여러 기능부서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부서 안에서도 교수실이나 의사실, 진찰실 같은 지위 높은 스태프 위주로 창가를 차지해왔습니다. 반면에 직원들, 물류를 나르거나 청소하시는 분들, 휠체어나 스트레쳐로 이동하는 환자들에게 볼거리라고는 복도 양쪽에 서있는 벽과 출입문들뿐입니다.

 

물론 외주부에 복도 위주로 배치하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햇볕과 조망이 좋은 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제까지 무심해왔던 직원 복도에 있어서도, 동선이 빈번한 부분에 한해서 햇볕과 조망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나눠 가지는 건 어떨까요? “Sunlight for Everyone!”

 

 

  

 

 

글. 박원배 (정림건축 /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이사)

출처. "헬스케어 디자인 매거진" MAGAZINE HD 2022 9월호 <https://magazine-hd.kr/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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