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형태는 물론 재료의 물성도 구체적으로 고민하라
정림건축의 기본을 되새기다 - 4한국외환은행 본점과 대구은행 본점은 지난 50년 정림건축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지난 시대 정림건축의 선배들이 불확실한 상황과 여건을 기회로 바꾼 지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외환은행 본점과 대구은행 본점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은행건축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선배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배들이 전하는 건강한 건축에 대한 가치는 지난 50년 동안 정림건축에서 수행한 수많은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있는 가치로 ‘정림건축의 ’기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한국은행 본점 설계의 PM이었던 김창일 선배를 만나 후배 건축인들의 고민을 물어보았다. 설계 당시 선배들의 고민과 현재 우리의 고민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Q1 한국외환은행 본점 설계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명동지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설계된 한국외환은행 본점은 도심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파생되는 영향을 최소화하여 도시환경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또 한국외환은행 고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넓은 외부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고자 하였습니다. 오피스 타워와 저층부 영업장을 대등하게 표현하고 지하 부분에는 은행 고유의 보안이 필요한 시설들을 수용하여 지상건물의 용적을 축소하였으며, 영업장은 고객의 출입이 용이하도록 명동 측 도로변에 배치하였습니다.
Q2 처음으로 수행하는 은행 본점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한국외환은행은 1973년 12명의 건축가를 초청한 지명공모전의 당선안입니다. 제작비가 지원되고 설계기간은 30일이었습니다. 당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설계 변경이 있었으나 정림건축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작품이며 정식으로 초청된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작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만들어 다음 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故김정철 회장님을 비롯한 전 직원이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Q3 설계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현상설계 안으로 건물의 규모를 지하 3층, 지상 35층으로 제출하였으나 당시의 건축법이 행정적으로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명동지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주변 경관 관련 문제 때문에 설계안대로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당선까지 이르게 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4 한국외환은행을 설계한 건축가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은행건축으로는 처음으로 타워부와 포디움으로 구성되어 외형만으로도 은행의 두 기능을 충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타워는 오피스로서 최고 의사 결정 기능과 본부 기능을, 포디움은 은행의 영업장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시 국내 은행이 가지고 있던 중량감 있는 기둥 및 좁고 높은 출입구 등에서 느껴지는 견고함과 중후감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시도한 대형유리는 포디움의 내외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높은 천장 덕에 가지게 된 시원하게 열린 객장 내부 공간과 지하1층에서 영업장으로 이어지는 선큰가든 등 백화점식 영업장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Q5 그렇다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당선 후 조정된 규모로 지하 3층, 지상 28층 안이 확정되어 공사발주 완료 후 공사 중에 건설부와 서울시에서 건축물 규모를 지하 3층, 지상 25층으로 조정하라는 권고 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철수한 후 당시 구 정림건축 사옥 2층에서 이미 일본 발주로 들어온 26-28층 3개 층의 철골 부재를 이용해 대지 남측에 Annex빌딩을 설계한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입니다.
Q6 40년이 흐른 지금 한국외환은행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외환은행은 우리 정림건축과 같이 1967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여러 지방은행도 대부분 정림건축과 창립 시기가 비슷합니다. 한국외환은행 본점은 정림건축에서 처음으로 수행한 은행 본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능률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면을 짰으며, 특히 본점의 상징을 형태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합리성, 선진성, 안전성, 국제성, 신뢰, 진취, 밝음 등과 같은 상징성 구현을 목표로 몇몇 수입 기자재를 제외하고는 국산 자재를 사용하여 검소하고 소박함을 유지토록 하였습니다. 일반직원의 사무실, 집회장, 후생시설은 건강 유지와 능률 향상에 필요한 마감을 하였으며, 영업장과 같은 고객을 받는 객장, 회의장 등은 은행 본질에 어울리는 마감재를 사용하는 등 합리적인 설계를 추구하였습니다. 건물의 구조체는 포디움을 철근콘크리트로, 타워부는 허니콤 빔(Honey Comb Beam) 철골에 공장제 코너 슬래브(Core Slab)를 사용하였습니다. 타워 부분의 외장은 공장제작 타일부착 PC판을 사용해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먼 곳에서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리드 패턴을 넣은 굵직한 형태입니다. 포디움의 외관은 1층을 유리로 마감해 내외부가 투시되는 친근한 외관이 특징입니다. 완공된 지 약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숙하고 왠지 접근하고 싶은 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7 앞으로 정림건축을 이끌어 갈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정림건축은 첫째도 둘째도 건축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창의성 있는 건전한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 정도경영을 목표로 창의성과 기술력의 성과물인 토탈 디자인(TOTAL DESIGN)을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정림인들은 고객을 본인처럼 생각하고 고객이 의뢰한 건축물에 기능을 충실히 담고자 노력하여야 합니다. 도시 및 주위에 순응하도록 합리적이며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디자인 및 사람을 다룰 수 있어야 하며, 개성이 있되 남의 개성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림건축은 500여 명이 근무하는 설계 전문집단입니다. 대형설계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건축의 전부보다는 일부 국한된 부분의 전문기술만 습득하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본인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월급쟁이가 되지 말고 나 스스로가 정림건축을 경영한다고 생각하고 실력을 키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정림건축의 기본을 되새기다”, , 《Junglim Architecture Works 2013》 발췌 재구성